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가족 / 진은영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약수터에 갔더니 두 노인이 '효가 무너진 세태'에 대해 한탄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 도대체 무얼 가르치느냐며 분개하시더니, 결국은 자신들 며느리 이야기로 돌아갔다.

언뜻 들어보면 두 노인이 '효의 윤리'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그 두 노인은 효에 대해 잘 아는 것 같고.

그럼 두 노인은 '효'를 잘 실천했을까? 잘 알지만 '인간'이기에 실천하기 어려웠다고?

겉으로 보면 두 노인은 '효'를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진짜 속마음은 '자신들에게 밥조차 제대로 차려주지 않는 며느리에 대해 불평'하고 있는 것이다.

주제를 '밥조차 제대로 차려 주지 않는 며느리'로만 한정하면, '왜 며느리가 시아버지 밥을 차려줘야 하느냐?' '시아버지는 스스로 밥을 차려먹으면 안 되느냐?' '며느리가 밥을 차려주지 않는 이유는 뭘까?'...... .

이렇게 이야기가 흘러가면 자신들의 '속셈과 약점'이 드러나니까 그들은 '효'라는 그 누구도 거부하기 힘든 '대의명분(大義名分)'을 내세우는 것이다.

흔히 지행일치(知行一致)를 말한다. '아는 것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들(知)'이라는 게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그러니 지(知)와 행(行)을 일치(一致)하기가 힘들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알지만 실천하기는 힘들군.' 그러면서 '알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고 그 죄의식을 남에게 뒤집어씌운다.

이런 전통적인 유교 가르침에 대해 반기를 든 사람이 왕양명이다. 그는 지행합일(知行合一 )을 주장한다. '앎은 곧 실천'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그 두 노인이 '아는 것(知)'은 '효를 내세워 며느리에게 대접받자'는 것이다. 그것을 지금 '대화를 통해 실천(行合一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허공에 떠돌아다니는 온갖 지식들의 속살을 봐야 한다. 그 지식들의 전체 모습을 봐야 한다. 지(知)와 행(行)은 하나(合一)다.

조선봉건국가를 유지하려 내세운 '지행일치(知行一致)'라는 윤리가 민주주의 시대에 사는 우리의 의식을 얼마나 흐리게 하고 있는가?

더 이상 이런 허구의 윤리에 속지 말자. 지식에 서려있는 안개를 걷어내자. 말갛게 드러나는 지식(知)들. 그것들을 보자. 이미 행(行)해지고 지식들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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