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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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
‎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
‎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
‎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
‎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
‎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기의식의 출현과 때를 같이하여 우리는 진리의 본고장으로 들어선다. 여기서 우선 자기의식이 어떤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가를 살펴보아야만 하겠다. 자기를 안다고 하는 지의 새로운 형태와 타자를 안다고 하는 앞서간 지의 형태를 비교해볼 때 일단 타자라는 것이 소멸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러면서도 동시에 타자 속에 깃들어 있는 요소는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므로 실제로 소멸된 것은 타자가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측면뿐이다.〔......〕참된 자유는 나와 타자와의 동일성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타자가 나와 마찬가지로 자유롭고, 또 나에 의해서 자유로운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만 나는 참으로 자유롭다.

                                        -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정신 현상학』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집에 보일러가 고장 나 보일러 수리기사를 불렀다고 한다. 보일러를 다 고치자 확진자는 그제서야 자신이 확진자임을 밝히며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고 한다.

이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다들 황당해 한다. 한 아주머니는 “이제는 집 앞에 확진자라는 명패를 걸아야 할까 봐요.”하며 씁쓸하게 웃는다.

얼마 전에 TV가 고장 나 전화국에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코로나 격리자 없어요?” 헉! 독일에서 온 큰 아이가 막 자가 격리를 끝냈을 때였다.

그 확진자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그가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면? 나처럼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라면?

그럼 그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가 정직하게 확진자라고 밝히면 보일러 수리기사가 오지 않을 텐데. 집을 비우고 다른 데 가면 감염병 예방법을 어기게 될 텐데. 그날 고치지 않으면 치료받는 동안 수도관이 얼어버릴 텐데.

우리 사회는 한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비상상황에서 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 꽤 많을 텐데.

하지만 인간이 그가 처한 상황에 종속되어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일까? 상황을 헤쳐 나가는 자유 의지는 아예 없는 걸까?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일갈했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자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자신을 볼 수 있는 의식. 동물은 물에 비친 자신을 보고도 자신인 줄 모른다. 오로지 바깥만 본다.

헤겔은 인간의 의식이 자기의식을 거쳐 어떻게 정신을 획득하는지를 설명한다. ‘이러한 자기의식의 출현과 때를 같이하여 우리는 진리의 본고장으로 들어선다.’

그는 자기의식은 변증법적으로 발전하여 절대정신, 신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타자의 인정이다. 주체와 타자는 인정투쟁을 벌이며 결국에는 상호인정의 사회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기의식’이다. 마음이 몸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깨어 있음, 알아차림이다. 항상 자신의 마음을 무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정신이 상승한다. 나를 인정하고 남을 인정하는 정신,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이다. 상생(相生)으로. 나눔과 사랑이 가득한 정신으로.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자기의식’을 갖기 힘들다. 항상 남들과 생존경쟁을 해야 하기에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여유가 없다.

그래서 다들 맹목적으로, 습관적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 확진자가 평소에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며 살았다면, 그런 비상상황에서도 보일러 수리기사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보일러도 수리하고 수리기사도 배려하는 방법을 끝내 찾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 확진자를 비난하지만 그 상황에서 그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평소에 우리는 남을 거의 배려하지 않는다. 더구나 다급한 상황에서 어느 누가 남을 배려할까?

세상은 만인 대 만인의 전쟁터, 생지옥이지만 성찰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겐 반드시 길이 열린다. ‘자신의 길’을 찾아가게 된다.

윤동주 시인은 일제강점기에 오랜 방황과 성찰의 시간을 거친 끝에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노래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윤동주, 《서시》 부분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는 사람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고석근 시인 약력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편집자 착오로 원고를 하루 늦게 게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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