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58년 개띠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다시 봄이 왔습니다.
자연의 봄은 시간이 되면 오지만 역사의 봄은 그렇지 않나 봅니다.
하지만 역사의 봄이 오는 데 함께 했던 사람들은 괜히 들뜨지도 않고, 쉽게 좌절하지도 않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저는 꽃샘추위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물론 며칠 만에 끝나는 꽃샘추위는 아니겠지요.
그러나 우여곡절과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으면서도 민족은, 민중은 의연한 발걸음을 이어왔습니다.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 신돌석씨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맨 앞에 서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남들 뒤꽁무니를 따라가지는 않았습니다.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신돌석씨의 삶을 새로 발견하고, 함께 알리고, 서로 배우는 이야기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통일뉴스 독자 여러분들의 참여와 응원과 질책을 기다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필자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옆 침대에 어떤 남자가 와서 뭐라고 하는 바람에 깼다. 시계를 보니 1시 반쯤 되었다. 아마도 의사인 것 같았다. 나이나 이 늦은 시간에 온 것 보면 전공의이지 않을까? 이 남자가 내일 수술을 하는 옆 침대 젊은 여자에게 과다출혈이 될 수도 있으니 동의서를 쓰라고 했다. 사실 환자 처지에서는 좀 끔찍한 주문이다. 그러면 과다출혈이 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 병원은 책임이 없고, 환자는 동의했으니 그냥 감수해야 하는 것인가? 환자가 망설이는지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동의서를 쓰는 것 같았다. 남자가 가고 한참 동안 잠을 못 이루었다. 옆 침대 여자도 잠을 못 자는지 훌쩍거리면서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잠깐 잠이 드는가 했는데 간호사가 왔다. 혈압을 재러 왔단다. 시계를 보니 4시 50분쯤 되었다. 이제부터는 제대로 자기는 그른 것 같았다. 하긴 환자 보호자로 와서 푹 잔다는 생각부터 웃기는 것이기는 하다. 6시 반쯤 간호사가 와서 7시쯤 수액을 주사하고 고정시킬 테니 씻고 옷 갈아입으란다 아내 먼저 씻고 신돌석씨는 복도에 나가서 정수기에서 물을 떠오고 씻었다. 그런데 복도에 나갔다가 끝쪽 병실에 들어가는 간호사가 방호복을 입고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거기에 확진자가 있는 모양이었다. 확진자도 병원 어딘가에 있어야 하고, 병원에서 철저히 관리할 터인데 괜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느덧 시간이 7시 30분이 넘어서 수술을 시작했을 텐데 다섯 번째라는 것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다섯 번째가 정형외과의 다섯 번째라는 생각은 들었는데, 아내 담당의가 다섯 명을 연속으로 한다는 것인지 어떤지를 모르겠다. 또 어떻게 순서를 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입원한 순서인지 아니면 자신들이 수술하기 편한 대로 순서를 정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금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신돌석씨 혼자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밥을 먹고 오는 동안에 수술하러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월요일이라서 식당을 열었는데 8시부터 연다고 하였다. 조금 기다렸다가 식사를 하고 올라왔다.

9시가 되었다. 간호사가 와서 아내의 혈압을 재고 신돌석씨는 체온을 쟀다. 그 사이에 코로나 전염이 될까 확인하는 것 같았다. 옆쪽 여자는 일찍 수술하러 나갔다. 친정엄마가 온 것 같다. 입원 순서로나 중한 정도로 보나 그 여자가 먼저 하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그런데 다음 순서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여자는 내일 병원을 옮긴단다. 전문병원으로 가는 것 같다. 아무래도 상태가 중해서 오래 입원해 있어야 할 모양이다. 여기 담당의가 추천서를 써준단다. 이런 것들을 의사나 간호사, 병원 직원인 듯한 사람들이 와서 이야기하는 것들을 통해 알았다. 대각선에 있는 여자는 오늘 퇴원한단다. 젊은 의사를 오게 해서 이러쿵 저러쿵 요구도 많다. 그 전에 간호사가 왔을 때 한참 뭔가를 요구했는데 그 처리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의사 오라고 해서는 또 요구를 했다. 그런데 전공의인지 전문의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젊은 이 의사는 환자의 말을 잘 들어준다. 그리고 퇴원하면 집에 가서까지 진료를 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기다리다 너무 시간이 무료해서 휴게실로 나갔다. 8층 내에 휴게실이 있는데 어젯밤에도 나왔었다.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텔레비전을 보고, 한 사람은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휴게실에 갔다 들어오니 대각선 여자가 퇴원한 뒤 소독을 했는지 냄새가 심하게 났다. 아내가 간호사들에게 창문을 열어달라고 하고 그래도 냄새가 심해서 휴게실로 다시 나갔다. 물론 소독은 해야겠지만 너무 심하게 하는 것 같다. 그것도 방에 사람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이렇게 하는 것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기다리다 지칠 지경이었다. 12시를 넘겼다. 아내가 점심 먹으러 갔다 오라고 하는데 그 사이에 수술한다고 할까 봐 가지 못했다. 아내한테 수술 끝난 다음에 먹겠다고 했다. 아내가 그러면 자기가 수술하는 동안 먹고 올라오라고 하였다. 1시 30분쯤이 되어서야 수술 들어간다고 연락이 왔다. 혈압 검사를 하고 엉덩이 주사를 맞았다. 수술실은 3층에 있었다. 옆 침대 여자는 침대로 옮겨졌는데 아내한테는 휠체어를 가지고 와서 그걸 타고 가라고 하고는 수술 환자 옮기는 직원은 가버렸다. 철심을 뽑는 것이라서 수술 정도가 가벼운 것인지 아니면 침대가 부족해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신돌석씨가 휠체어를 밀면서 엘리베이터 타고 수술실이 있는 3층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수술 환자 침대를 옮기는 사람을 만났다. 다른 환자를 옮기고 있었다. 계속 전화를 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굉장히 바쁜 것 같았다. 이런 대형병원도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도 어떤 사람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뛰어다니고, 어떤 사람들은 그냥 자리 지키고 앉아 있다. 1시 44분에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갔다. 신돌석씨는 수술실 앞에서 보호자 확인을 하고는 대기실로 갔다. 대기실에 있는 전광판에 바로 아내 이름이 나오고 ‘수술중’이라고 떴다. 밥을 먹으러 갔다 올까 하다가 그 사이에 수술이 끝나고 찾으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그냥 있기로 했다. 전광판에 옆 침대 여자의 이름도 나왔다. 여전히 ‘수술중’이라고 한다. 상당히 일찍 나간 것 같은데 거의 다섯 시간 정도 하고 있는 것 같다. 큰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인 모양이다. 도중에 수술실에서 보호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사람은 보호자가 왔다가 사라졌는지 대답이 없고, 간호사가 대기실까지 와서 찾았는데도 없다. 그런가 하면 수술한다고 내려왔는데 보호자가 함께 안 와서 수술에 못 들어가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밥 먹으러 가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배가 고픈지 어떤지도 모르겠다. 도중에 ‘수술중’이 ‘회복중’으로 바뀌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겼다. 그리고 병실 이동이 뜨기도 하고, 대기하던 보호자가 나가기도 했다. 2시가 지나고 2시 반이 지나도 아내는 계속 ‘수술중’이다.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나사 조각이 남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것을 제거하려고 하는데 잘 안 돼서 오래 걸리나? 아니면 가끔 뉴스에 나오던데 마취가 잘못되었나? 그런 부질없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3시 4분에 ‘회복중’이라고 스크린에 떴다. 하마터면 ‘빙고’라고 탄성을 지를 뻔했다. 수술실 앞으로 갔다. 3시 25분쯤 아내가 수술실에서 나왔다. 병실로 왔다. 갈 때는 휠체어 타고 갔는데 올 때는 침상에 누워서 왔다. 침대로 가는 사람은 그대로 들어가면 되는데 아내는 갈 때 침대를 놓고 휠체어를 타고 갔기 때문에 원래 침대 옆에 대고 옆으로 이동해서 가서 누웠다. 수술 부위가 아프단다. 도착한 뒤 간호사들이 와서 여러 가지 처치를 했다. 4시간 금식이란다. 4시간 이후에 아내가 먹을 저녁 식사를 주문해 놓았다. 그런데 그 시간이 7시 반쯤 되어서 저녁 시간을 한참 넘긴 시간이다. 저녁 시간이 6시 반쯤인데 그때 갖다 주면 두고 있다가 먹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7시 반에 맞추어서 갖다 주는 것인지 모르겠다. 물어볼까 하다가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두었다.

옆 침대는 수술 끝나고 나갔는지 비어 있고 대각선으로 퇴원한 자리에 어떤 할머니와 간병인인 듯한 사람이 있다. 자리를 옮기고 싶다고 해서 신돌석씨네 옆에 젊은 여자가 있던 침대로 왔다. 간호사가 와서 피검사를 위해 피를 뽑았다. 그리고 내려가서 엑스레이를 찍어야 하는데  사람이 많으니 이따 하잔다. 조금 있으니 오늘 수술을 집도한 교수가 회진을 했다. 수술 잘 됐다고 한다. 하루 정도는 아픈 것이니 조금 아파도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한 것인지 수술이 잘 됐다고 하니까 갑자기 의사가 존경스러워진다. 수술하기 전에는 혹시 돌팔이 아닌가 의심도 들더니 이제는 갑자기 화타나 편작인 것 같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수술을 하고 곧바로 멀쩡하게 환자들을 보러 돌아다닐까? 아니 이런 일을 수도 없이 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그 스트레스가 정말 굉장할 것이다. 의사도 아마 수술 끝낸 뒤 환자를 보고 이런 말 할 때의 기쁨으로 이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다. 의사가 간 뒤 간호사가 와서 다시 피를 뽑았다. 새로이 옆에 들어온 할머니는 약간 치매기가 있는 듯하다. 간병인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자꾸 묻는다. 그리고 가래를 계속해서 수도 없이 뱉는다. 조금 있다가 간호사 둘이 와서 간병인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방호복을 주고 갔다. 간병인이 방호복으로 갈아입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갑자기 불안해졌다. 간병인에게 왜 그런 옷을 입냐고 물으니 자기도 잘 모르는데 간호사들이 입으라고 했단다. 어이가 없다. 간병인은 말투로 봐서 조선족인 듯하다. 아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음료수를 가지고 와서 마시라고 준다. 거절하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받았다. 하지만 마시기에는 찜찜하고 아내가 뭐라 그럴 것이 우려되어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아마 아내가 있었으면 바로 거절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엑스레이 찍으러 갈 이송 담당이 왔다. 원래 옆에 있었던 여자를 침대로 밀면서 데리고 왔다. 이 여자는 퇴원을 한 것이 아니라, 병실을 옮긴 모양이다. 그 여자는 침대로 밀고 가고 아내에게는 걸어가란다. 걸을 만하니까 그렇겠지. 신돌석씨가 수액 걸쳐 놓은 봉을 옆에서 잡아주면서 엑스레이를 찍는 1층으로 내려갔다.

[삽화-백소(白笑)]
[삽화-백소(白笑)]

엑스레이 찍고 올라와 보니 여전히 간병인은 방호복을 입고 있고, 할머니는 계속 가래를 뱉고 있다. 아내가 신돌석씨더러 점심도 안 먹었으니 저녁 먹으러 갔다 오란다. 아내는 4시간을 금식해야 하고, 앞에 두 시간은 반드시 깨어 있어야 한단다. 이제 두 시간은 지났으니 자도 되니까 신돌석씨가 식사하러 내려가기로 했다. 식사하러 내려가면서 간호사실에 왜 간병인이 방호복을 입고 있는지 물어봤다. 옆 침대 할머니가 확진되었다가 나았는데 간병인이 밀접 접촉해야 해서 그렇단다. 방 같이 쓰는 데는 문제 없다고 한다. 찜찜하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서 아내에게 전화했다. 방 바꿔 달라고 하란다. 알겠다고 했다. 이런 때면 신돌석씨는 마음에 갈등이 생긴다. 마치 자신의 소소한 이익을 위해 고통받는 사람을 저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사실 신돌석씨가 그런 생각을 가질 까닭은 전혀 없다. 의료진도 아니고, 신돌석씨가 옮긴다고 해서 그들에게 피해가 될 것도 없다. 그런데도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천성 때문인가? 마음이 착해서 그러나, 약해서 그러나? 하지만 그냥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코로나 전염도 우려되지만, 그 할머니는 가래도 쉴 새 없이 뱉는다. 무슨 병에 걸려 있는지 대책이 없다. 이럴 때는 마음 굳게 먹고 전투 모드로 가야 한다. 지하 1층 식당에서 비빔밥을 시켜서 먹고 있는데 아내가 전화했다. 어디 있냐고 하더니 자기가 말했으니 올라와서 처리하란다. 아내는 신돌석씨의 평소 성품을 알기 때문에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바로 이야기한 모양이다. 이럴 때 보면 아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말 칼 같은 사람이다. 올라가서 5인실로 옮겼다. 간호사실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있는 병실이다. 5인실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넓고 침대 하나의 공간도 더 넓은 것 같다. 그 방에는 미리 세 사람이 들어와 있었다.

아내는 수술 회복 이후 4시간을 금식해야 하고, 그 중 2시간은 반드시 자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7시 반쯤에 식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우려했듯이 7시 반이 되었는데도 밥이 안 온다. 간호사실로 가서 물었다. 무슨 말인지 모른다. 식사 시간에 오지 않았냐고 한다. 시켰는데 안 왔다고 했더니 이상하다고 한다.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더니 원래 있던 방으로 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한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6시 반에 밥이 오고 그걸 두고 있다가 7시 반까지 금식한 뒤 먹는 걸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데 원래 방에 갔더니 아무것도 오지 않았단다. 결국 간호사들이 제대로 시키지를 않은 것이다. 이래도 되는 것인지 화가 나지만 참기로 했다. 원래 방에는 아직 그 할머니와 간병인만 있었다. 간병인이 신돌석씨를 보고는 반가워하면서 다시 오기로 했냐고 한다. 한편으로는 미안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짜증이 나기도 했다. 아니라고 말하고는 돌아서 나오는데 괜히 짠한 생각이 들었다. 다시 간호사실로 가서 안 왔다고 했다. 간호사들이 서로 상의하더니 자기들 밥 중에 손대지 않은 것이 있으니 드시라고 주었다. 이제 와서 이것저것 따져야 되돌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그냥 받아서 가지고 갔다. 아내가 미리미리 알아봤어야 하지 않느냐면서 핀잔을 주었다. 그 말을 듣자 좀 화가 났다. 사실 신돌석씨의 불찰이 있었다. 하지만 뛰어다니며 알아본 사람에게 고작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그래서 그렇게밖에 말 못하냐고 하니까 아내가 그럴 거면 들어가란다. 그리고는 내일 택시 타고 갈 거니까 지금 담요 등은 들고 가란다. 이리저리 짐을 쌌다. 짐 다 싸고 간다고 하니까 자기에게 커피 사주고 가란다. 수술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이 무슨 커피냐고 하니까 꼭 마시고 싶단다. 그래서 알았다고 하면서 내려가려고 하니까 밥을 반쯤 먹으면 내려가란다. 기다리다 내려갔다. 지하 1층 커피숍에서 커피 사서 아내를 주고, 간다고 건성으로 인사하고 병원에서 나왔다.

왠지 기분이 안 좋았다. 신돌석씨 나름대로 아내한테 잘 해주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꼬이는지 모르겠다. 병원에서 택시를 탈까 하다가 조금 걷는 것도 괜찮다 싶어서 전철역을 향해 걸어갔다. 도중에 이 도시에서 꽤 유명한 공원이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환한 불빛 아래서 농구를 했다. 불과 몇백 미터 옆에서 죽느냐 사느냐를 다투는 사람들이 있고, 순간순간이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줄지어 있는데, 여기서는 활기차게 젊은 생명이 움직이고 있다. 전철 타고 가다가 내려서 버스로 갈아타고 동네에 도착했다. 동네 교차로 옆에 있는 구멍가게에 들어가서 맥주 큰 것 한 통을 샀다. 아내와 힘찬이 아름이에게 톡을 했다. 오는 동안 누그러져서 아내에게 톡을 할 마음이 생겼다. 아내는 잠이 들었는지 답이 없다. 텔레비전을 틀었다. 가요무대를 하고 있었다. 아내와 아직 연애하기 시절, 요즘 말로 하면 썸탈 때라고 해야 하나? 모여서 술 마실 때 아내가 불렀던 노래가 나왔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였다. 아내가 이 노래를 부를 때 신돌석씨를 보고 부르는 것 같았고, 사람들이 신돌석씨더러 눈 좀 다른 데로 돌리라고 했다. 입이 헤 벌어져서 아내만 보고 있더라나. 텔레비전에서 2절이 나올 때 따라 불렀다. ‘십년이 가도 백년이 가도 살아만 돌아오소 울며 넘던 이 고개여’ 갑자기 아내가 막 보고 싶어졌다. 울컥하는 마음도 생겼다. 환자복 입은 아내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힘찬이 낳을 때가 생각났다. 신돌석씨가 수배되어 도망다닐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아내가 쓰러져서 처가로 갔다는 말을 듣고 혼자 집에 있다는 힘찬이를 데리고 찾아갔던 일이 있었다. 아내는 초췌한 모습으로 지쳐 있었다. 그리고 다시 경찰 트럭에서 짓밟혀서 코피가 온통 범벅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갑자기 웃음이 났다. 손목에 있는 철심 빼는 걸 가기고 뭘 그리 감상에 젖을까? 아내가 이 생각을 들으면 마치 마누라 죽는 줄 알고 호들갑을 떠냐고 핀잔을 줄 것이다. 신돌석씨는 한 통을 다 비우고, 다시 가게로 나가 한 통을 더 샀다. 평소에는 아는 체도 잘 안 하던 가게 주인이 ‘부족하셨던 모양이죠’라고 하면서 싱글싱글 웃었다. 그냥 씩 웃는 걸로 답을 했다. 내일은 차를 몰고 아내한테 가야지. 택시 타고 오겠다고 해도 무조건 가겠다고 해야지.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신돌석씨는 굳게 다짐했다. 아내는 신돌석씨에게는 정말 너무나 소중한 당신이니까.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